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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 | 왕가위의 과거 영화들에게 보내는 인사

새록리뷰 2021. 3. 3. 06:00

*<일대종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CGV 왕가위특별전으로 달렸던 2월. 그 마지막으로 <일대종사>를 보고왔다. 시기 순서로도, 내 관람 순서로도 마지막인 그의 각본 작품이었다. 감회가 남달랐다. 2월 내내 봤던 그의 영화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일대종사>는 꼭 왕가위가 영화에 대해 전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중국과 홍콩의 역사에 대한 배경 지식 또는 무협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다른 해석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나는 철저히 왕가위 감독 영화를 좋아하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인상깊었던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후반부에 궁이(장쯔이)와 엽문(양조위)이 가게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1950년이었다. 궁이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엽문을 찾았다. "당신을 마음에 품은 적도 있었어요. 바라는 거 없어요. 후회가 없다면 세상 재미없을 거야."

별 거 아닌 듯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궁이의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궁이는 둘이 무술을 겨루고 궁가가 위엄을 떨치던 시절을 '좋았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엽문이 언젠가 다시 보여달라고 하던 궁가 64수 같은 거 이제는 잊은 지 오래라며, 고향이 너무 그립다고 했다. 궁이의 '좋았던 시절'이라는 말에 그 뜻이 담긴 단어 '화양연화'가 떠올렸고 영화 <화양연화>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밖으로 나온 둘은 나란히 걷는다. 둘의 나란한 뒷모습이 <화양연화>의 어느 장면과 닮았다. 

 

영화의 첫 시작은 1925년이었다. 궁가 같은 무협 세력이 권위를 거느리는 게 당연하던 시대였다. 1950년은 많이 달랐다. 궁이는 가문의 복수를 앞두고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살인이 어려운가?". 시대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 엽문은 그를 알아보는 이가 없고, 무술 학원 스승으로 면접을 보러 가기도 한다. 그때 직원의 옷 차림새만 봐도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번 작품에서 왕가위 감독 영화 인물들의 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전 작품에서 반복해서 나타났던 '거절'이 나타나지 않는다. 늘 떠나자던 남자와, 거절하던 여자. 거절당한 남자는 한 없이 과거에 머물러 살고, 버림 받았다 느끼는 여자는 그 주위를 배회했다. <동사서독>, <화양연화>, <2046>이 모두 그랬다. <일대종사>의 엽문과 궁이는 다르다. 엽문은 무술을 하기 위해 아내(송혜교)를 떠나왔고,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는 인물이었다. 궁이는 후회할지언정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정리를 마쳤다.

 

왕가위 감독의 이전 영화들이 홍콩 반환 전후의 불안한 마음을 담았다고 하니, 2013년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등장하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에 엽문과 궁이를 보면서 그의 영화에 대한 태도를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1925년과 1950년이 많이 다르듯, 1990년대와 2010년대도 차이가 크다. 화양연화였던 밀레니얼 전후 그의 영화 전성기는 좋았던 대로 남기고 앞을 보고 살아가는 것. 그는 그의 과거 영화들을 이렇게 마무리짓는다. 그 시절 영화들에 보내는 작별인사 같다고 생각했다. 이를 테면, 왕가위 1부 끝. 초기 영화들은 따로 있으니 2부 끝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이게 2013년이다. 그는 그 이후로 아직 새롭게 각본을 맡은 작품이 없다. 왕가위의 새로운 작품은 이전과 다른 구분을 가진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