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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 | 해피투게더에서 통편집 된 캐릭터 두 명

새록리뷰 2021. 2. 17. 21:03

<해피 투게더>를 보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도 세트로 예매를 해뒀다. 누군가는 후속이라고 하고, 누군가는메이킹 필름이라고 해서 뭔지 궁금했다. 오늘 보고 오니 이 영화에는 <해피 투게더> 제작 과정과 함께 영화 앞뒤로 덧붙였을 수도 있는 말하자면 삭제된 씬들이 포함되어 있다. 홍콩과 정반대라는 곳,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실제로 촬영팀들이 촬영 기간이 늘어지며 향수병을 겪기도 했고, 이런 것들에 영향을 받아 영화가 거듭 수정되며 만들어졌기 때문에 영화와 촬영기가 동일시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해피 투게더>는 한 번에 이해하기 쉬운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 속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둘이 함께 하는 게 과연 해피 투게더가 맞는 걸까? 싶다가도 어떤 인연은 이렇기도 하지 않는가하며 납득을 했더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를 보고 나니 <해피 투게더>의 여러 궁금증들이 해결되었다. 이 글에서는 <해피 투게더> 최종본과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의 삭제된 장면들을 떠올리며 퍼즐을 맞춰보려고 한다. 


 

<해피 투게더>에서 통편집된 두 명의 여성 캐릭터가 있었다. 첫 번째 인물은 간호사였고, 아휘를 좋아했다. 병원에서 보영의 손을 치료해주는 장면을 찍기도 했다. 그때, 보영은 간호사가 집으로 왕진도 오냐며 둘 사이를 질투하는 모습을 보였다. 추후,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보영이 찾아와서 "보영이는요?"하고 묻자 아휘가 죽었다고 알려준다. 아휘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보영은 자신이 떠날 때 뒤에서 하보영을 외치며 목을 긋는 아휘를 떠올린다.

이때, 간호사는 아휘네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정반대의 인테리어로 보아 아휘가 죽고난 뒤 그 집에 머물게 된 것 같다. 처음에는 옆집에 사는 사람인가? 싶기도 했는데 보영이 "왜 여기있어요?"라고 묻는 걸 보면 죽은 뒤에 머물게 된 게 맞는 것 같다.

자, 근데 왜 보영이가 "보영이는요?"라고 했냐면, 이 전에 삭제된 장면이 또 있었다. 아휘가 여권을 숨기고 돌려주지 않으면서 "너가 여아휘야. 나는 하보영이고. 내가 여권을 안 돌려주는 이유가 뭔지 알아? 네 이름을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야."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대사를 했었기 때문이다.

 

간호사라는 인물이 등장했고, 아휘의 자살로 영화가 마무리되었더라면 아마도 이런 순서였을 것이다.

간호사가 아휘를 좋아함 보영이 눈치 채고 병원에서 질투하는 장면 아휘가 보영 여권 숨기고 이름에 대한 얘기하고, 보영이 집을 나가자 자살 시도 → 보영이 집 나갔다가 다시 찾아옴, 아휘는 이미 죽었음

 

출처 : 다음 영화

두 번째 여성 인물의 이름은 '셜리'였다. 영화 출연진에 써있는 역할을 보면 '아휘의 여자친구'라고 되어있는데 누구 피셜로 쓴 건지 모르겠다. 셜리와 아휘가 우연히 만나고, 놀이공원에 다녀오는 씬이 나오는데, 헤어질 때 셜리를 데리러 오는 차가 오자 셜리는 아휘한테 안아달라고 한다. 아휘가 "왜?"라고 묻자, "질투하라고."라고 답한다. 자세히 모르겠지만, 안아달라는데 왜라고 묻는 걸 보니 사귀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장이 대만으로 떠나는 날 역에서 셜리를 만난다. 그들은 길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데, 장이 셜리가 노래를 부르는 걸 봤다며 녹음기에 대고 노래를 해달라고 한다. 그렇게 장은 대만으로, 셜리는 아휘가 간다던 폭포로 간다. 셜리는 폭포 근처에 일자리를 얻고, 가끔씩 아휘 생각을 한다. 좋아하는 누군가가 떠난 곳에 찾아가고 그곳에 맴도는 장면이 <아비정전>의 루루, <화양연화>의 첸 부인과 닮았다. 근 2주일 간 왕가위 영화만 보다보니 왕가위 유니버스를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셜리라는 인물이 등장하면, 이렇게 끼워넣을 수 있을 것 같다. 

보영이 집을 나갔을 때 자살 시도X, 또는 자살 시도를 했지만 살아남아서 우연히 셜리를 만남 → 둘은 이루어지지 않음 → 아휘는 폭포에 갔다가 홍콩으로 떠나고, 셜리는 폭포에 남고, 장은 대만으로 떠난다.

 

간호사랑 셜리는 공존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아휘랑 얽힌 인물이 보영, 장, 셜리, 간호사까지 4명인데 너무 많기 때문이다. 셜리라는 인물은 짧게 지나가고 결국 모두 편집되었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에서 나온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Waterfall Cucurrucucu Paloma'를 부르는데 너어어무 좋기 때문이다. (<해피 투게더>에서는 Caetano Veloso라는 남성 보컬이 부른 버전이 수록되었었다.)

'셜리' 역할을 맡은 배우는 우리나라 사이트에서는 관숙이, 관숙의로 표기가 되고 있는데 실제 활동명은 'Shirley Kwan'으로 실제 이름을 극중에서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생각하니까, 그냥 셜리를 지칭한 것인지 극중 이름이 그랬는지 헷갈린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 중 셜리 노래 삽입 장면

 

라이브 버전

영화를 보면 그 안의 이야기만 존재한다고 믿게 되지 않나. 그런데 우리가 몰랐던, 영화 속 인물들이 만났던 또 다른 인물들과 그들과 맺은 관계들을 알고 나니까 이 사람들이 실재했던 것 마냥 느껴진다. 아휘와 보영의 1997년 그 당시의 이야기. 실제로도 캐릭터와 닮을 수밖에 없었던 면이 상당히 있다. 양조위의 인터뷰를 보면, 촬영하러 아르헨티나에 갔지만 영화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고 아휘가 아르헨티나에 발이 묶인 것처럼 양조위도 그런 느낌이었다고 한다. 홍콩에서 촬영을 했다면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니까 역할과 구분이 될 텐데 아르헨티나는 돌아갈 집이 없고 오로지 연기를 하러 갔으니 구분하기 힘들었다는 게 이해가 간다. 

 

3주의 촬영 기간을 잡고 아르헨티나로 갔지만 위의 상황처럼 캐릭터들을 삭제하고 다시 방향을 찾는 과정에서 촬영이 상당히 지연됐다고 한다. 배우들을 포함해 제작진 모두 향수병을 앓았고, 양조위는 실제로 홍콩으로 탈출할 계획까지 세웠다고. 영화보기 전 이 얘기를 접하긴 했는데 진짜일 줄은 몰랐다. 폭포 씬을 찍고 나서 시내로 가면 짐도 다 두고 비행기를 타려고 예약했다고 인터뷰하는 양조위의 장면이 나왔다. 그래도 이렇게 웃으며(ㅋㅋㅋ) 회상할 수 있는 걸 보면 영화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 현지 촬영이 치안도 좋지 않고 워낙 먼 곳이라 상황이 너무 극한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이런 모습을 보고 왕가위도 아휘를 홍콩에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장첸이 맡은 장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새로 이해할 수 있는 면이 많이 나왔는데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다음 글에 이어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