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에서 왕가위 감독의 기획전이 진행중이다. 지금까지 왕가위 영화를 총 세 편 봤다. 오늘 <열혈남아>를 보고 왔으니 총 네 편. <화양연화>, <해피투게더>, <아비정전>까지 이전에 봤던 영화들이 취향에 꼭 들어 맞았던 지라 감독의 이름만 믿고 나머지 모든 영화를 예매해뒀다.
*본 글에는 <열혈남아>와 <아비정전>에 대한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열혈남아>는 왕가위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영화로 알려져 있다. 1987년 작으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34년 전 작품이다. 왕가위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같은 배우들을 자주 출연시킨다. <열혈남아>의 캐스팅은 <아비정전>을 떠올리게 했다. 장만옥과 유덕화 그리고 장학우.
장만옥과 유덕화는 언제가 리즈 시절이 아니겠냐만은, 이 때는 정말 풋풋하다. <아비정전>에서 스치듯 지나간 두 사람의 인연이 아쉬웠더랬다. 개봉 시기로 따지면 <아비정전>이 그 이후이므로 당시에는 <열혈남아>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한 사람들에게 팬 서비스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장만옥과 유덕화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도 기억에 남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얼얼하게 기억이 나는 건 장학우의 얼굴이었다. 한 번이라도 영웅이 되고 싶다는 플라이(장학우). 그 풋내기 같은 마음이 가엾기도 하고, 그가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하는 아화(유덕화)를 생각하면 많이 밉기도 하다. <아비정전>에서도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를 좋아하는 역할로 나왔는데 특유의 찐따.. 분위기를 찰지게 잘 연기하는 것 같다.
나는 홍콩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인기를 실감하지 못 했는데 왜 한 시대를 풍미할 정도로 사랑을 받았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다. 배우들의 존재감과 함께 영화 특유의 청춘들의 비애가 담긴 분위기가 시너지를 일으켜 깊은 여운을 주었다. 이번 <열혈남아>을 보면서는 세기말에 나온 많은 국내 영화들이 떠올랐다. 홍콩 영화의 잔상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구나 싶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지금은 그로부터 20-30여 년이 흘렀다. 이번 왕가위 기획전 및 재개봉 덕분에 오늘 친구는 <해피투게더>를 보고, 나는 <열혈남아>를 보고 만났다. 서로 양조위니 장만옥이니 이야기를 하며 홍콩 영화가 주름 잡던 시대를 잠깐이나마 가늠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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