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영화리뷰

중경삼림 | 1994년의 홍콩은 여전히 이 필름 안에 살아있다

새록리뷰 2021. 3. 19. 01:20

중경삼림을 극장에서 두 번째로 관람했다. 캐치온부터 왓챠까지 슬슬 VOD, OTT로 공개되는 중이지만 내려가기 전에 꼭 극장에서 한 번 더 보고싶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첫 관람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페이(왕페이)와 마약 밀매상(임청하)이 인형 가게에서 한 장면에 담기는 것만 발견했었다. 그런데 하지무가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갈 때 663이 내려다보고 있었고, 마약 밀매상이 인도 사람들과 공항에 도착했을 때 663의 전여친인 스튜어디스가 택시를 잡고 있는 듯한 장면도 있었다. 이들의 시공간은 어떻게 흘러가는 것일까.

 

인형말고 카메라도 이때 산 거였나보다 🤔
이건 영화에 등장한 장면은 아닌 것 같은데, 왕가위라면 이 두 사람도 분명 만나게 했을 것 같아 찾아보니 스틸 컷 중에 있다. DVD엔 삽입되어 있으려나? 궁금하다.


앞 에피소드에서는 시간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223(금성무)이 5월 1일이 여자친구 메이와 헤어진 한달이 되는 날이라고 했으니까 영화의 시작은 아마 4월 1일이었으려나. 유통기한과 날짜가 넘어가는 달력이 등장하면서 끊임없이 시간을 환기한다. 뒤 에피소드에서는 시간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긴팔에 자켓 차림이던 223이 반팔 셔츠 차림으로 등장하며 시간이 지났음을 알리고 페이와 부딪히며 6시간 후의 페이와 663의 관계를 암시한다. 223은 시련을 당하고 나서 조깅을 한다고 했으니까, 702호의 그 여자의 연락 이후로 계속 조깅을 해온 것이라고 치면 뒤 에피는 앞 에피의 다음이지만, 어쩌면 그 전이나 몇 년 전 일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인물들끼리 부딪히는 장면들이 같은 시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은 같지만 시간은 다른 것이다. '중경삼림' 이후 작품인 '해피 투게더'와 '화양연화'에서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해피 투게더'에서는 화장실에서 귀걸이를 끼는 보영과,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오는 아휘를 한 장면에 담지만 이것은 서로 다른 시공간이다. '화영연화' 속 국수집 계단에서 서로 스쳐가는 차우와 수리도 마찬가지다.

 

시차가 다른 것이라고 느꼈다. 캘리포니아에서 페이를 기다리다 돌아가는 663이 이런 말을 한다. "다른 캘리포니아는 오전 11시다. 오후 8시가 되면 이 약속을 기억해낼까." 두 도시는 15시간 차이가 나니까 캘리포니아가 오전 11시면 홍콩은 오전 2시다. 663 거기서 6시간을 기다린 거야.. 그러니까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사장이 보고 혀를 쯧쯧 찰 만 하다. 사장은 663에게 페이가 오지 않을 거라며, 다음 날부터 메이가 출근할 것이라고 했다. 메이라니, 앞 에피에서 페이 전에 일하던 직원의 이름이 메이였다.

'중경삼림'의 시간은 평행선이 아니라 원처럼 순환하고 있다. 앞 에피와 뒤 에피 무엇이 먼저든 말이 된다. 하지만, 인물들이 교차하는 지점을 연결짓고자 한다면 그건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다. 애초에 공간만 같을 뿐이다. 나는 이번에 4K 리마스터링을 거쳐 개봉한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도 다른 시간이지만 같은 공간을 경험하고 있다고 느꼈다. 4K 리마스터링은 어떻게 되는 건가 하니, 필름은 빛을 담아내는 것이므로 원래 4K, 또는 그 이상의 화질을 담고 있다한다. 다만, 기술이 받쳐주지 않아 지금까지 자글자글한 화면으로 보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보는 세상은 어느 시절이든 지금과 같았을 텐데에도 불구하고, 기록된 영상으로 과거를 추억하다보니 어떤 과거는 노이즈가 가득한 화면으로 기억되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4K로 복원된 1994년을 보니까 감회가 새롭다. 그 때의 빛을 그대로 머금은 영화다. 필름의 매력이 한껏 더 느껴진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